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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수행자의 삶 - 광덕과 엄장 이야기

by 다보현 2025. 12. 29.

극락에서 만나자는 약속

신라 문무왕 시대, 광덕과 엄장이라는 두 승려가 있었습니다. 둘은 깊은 우정을 나누며 밤낮으로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먼저 극락에 가는 사람은 반드시 소식을 전하자."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삶은 사뭇 달랐습니다. 광덕은 분황사 서쪽 마을에 숨어 살면서 짚신을 만들어 생계를 이었고, 처자와 함께 살았습니다. 반면 엄장은 남쪽 산에 암자를 짓고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수행자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광덕의 왕생, 그리고 놀라운 진실

어느 날 해질 무렵, 엄장의 암자 창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벌써 서방 극락으로 가네. 자네도 잘 있다가 빨리 나를 따라오게."

 

엄장이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자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와 함께 밝은 빛이 땅까지 뻗쳐 있었습니다. 이튿날 광덕의 집을 찾아간 엄장은 친구가 이미 세상을 떠났음을 확인했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엄장은 홀로 남은 광덕의 아내에게 함께 살자고 제안했고, 여인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밤이 되어 정을 통하려 하자 여인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습니다.

 

"스님이 극락정토를 구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장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광덕도 그렇게 지냈는데, 나와는 왜 꺼리는가?"

 

평범한 듯 비범했던 광덕의 수행

여인의 대답은 엄장을 깊은 부끄러움에 빠뜨렸습니다.

 

"남편은 저와 10년 넘게 살았지만 단 하루밤도 한자리에서 잔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밤마다 단정히 앉아 한결같이 아미타불을 염송했고, 관무량수경16관법을 닦았습니다. 수행이 무르익자 달빛이 창으로 들어오면 그 빛 위에 올라 가부좌를 했습니다."

 

여인은 이어서 날카로운 지적을 했습니다.

 

"이처럼 정성을 다했는데 어디를 가겠습니까?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첫 발자국부터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 스님이 하시는 것을 보면 동쪽으로 가는지 서쪽 극락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엄장의 깨달음과 변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힌 엄장은 곧바로 원효법사를 찾아가 도 닦는 묘법을 간곡히 청했습니다. 원효는 정관법을 만들어 그를 지도했고, 엄장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습니다. 한결같이 도를 닦은 결과, 엄장 역시 극락왕생을 이루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여인은 분황사의 계집종으로, 관음보살 19응신 중 한 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광덕이 남긴 노래

 

광덕은 생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습니다.

 

달님이여,

이제 또 서방으로 가셔서

무량수불 앞에

말씀 전해 주십시오

 

깊은 믿음으로 부처님을 우러러며

두 손 모아 비옵나니

원왕생, 원왕생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십시오

 

아아, 이 몸 버리시고

마흔여덟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지실까?

 

이야기가 주는 교훈

이 이야기는 진정한 수행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처자와 함께 살았던 광덕이 오히려 산속에서 수행하던 엄장보다 먼저 극락에 갔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뚜렷한 원력(), 꾸준한 칭명염불(소리 내어 부처님 이름을 부르는 것), 그리고 관무량수경16관법의 수행. 광덕은 일상 속에서 한순간도 도심(道心)을 놓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수행은 삶의 형태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마음과 자세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광덕의 노래

#삼국유사 #불교설화 #극락간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