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가르침이 만든 비극
앙굴리말라는 사위성 출신의 총명한 청년이었습니다. 지혜와 용모가 뛰어났고, 수행에 열정적이었던 그는 북인도 지방에서 유학하며 스승 아래에서 배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나이 많은 남편에게 싫증을 느끼던 스승의 아내가 젊은 앙굴리말라에게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스승이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앙굴리말라에게 접근했지만 단호히 거절당합니다.
부끄러움과 분노, 그리고 자신의 부정한 행동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녀는 결국 남편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앙굴리말라가 자신에게 강제로 욕을 보였다고 말입니다.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 스승은 제자를 파멸시키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앙굴리말라에게 "100명의 사람을 죽이고 그 손가락을 잘라 목걸이를 만들면 승천할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을 전합니다.
스승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앙굴리말라는 이것이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 믿고 살인을 시작합니다. '아힘사(비폭력)'라는 이름을 가졌던 청년은 이제 '앙굴리말라(손가락 염주)'라는 공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부처님과의 만남, 멈춤의 가르침
99명을 죽이고 마지막 한 명을 찾아 헤매던 앙굴리말라. 그의 어머니는 절망 속에서 부처님을 찾아가 아들의 상황을 하소연합니다. 부처님은 그를 제도하기 위해 직접 앙굴리말라 앞에 나아갑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보고 "멈추라!"고 소리치며 달려갑니다. 하지만 평소처럼 걸어가시는 부처님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앙굴리말라가 걸음을 멈춰달라고 애원하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이미 멈춘 지가 오래되었다.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너다."
"부처는 탐욕과 성냄을 멈추고 번뇌와 고뇌의 끄달림을 멈춘 지 이미 오래되었으나, 너는 멈추지 못하고 있구나."
이 말씀에 정신이 든 앙굴리말라는 참회하고 출가하여 아힘사 비구가 됩니다. '손가락 염주'에서 다시 '비폭력'의 의미를 되찾은 것입니다.
왕과의 만남, 변화의 증명
어느 날 아침, 프라세나짓 왕이 천 명의 군대를 이끌고 살인마를 잡으러 가던 중 기원정사에 들러 부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부처님은 왕에게 묻습니다.
"만약 앙굴리말라가 잘못을 뉘우치고 비구가 되어 다시는 생명을 해하지 않고 존중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은 대답합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으나,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공양과 예배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바로 옆에 있던 아힘사 비구를 왕에게 인사시키자, 왕은 놀라움에 당황했지만 이내 말합니다.
"부처님의 공덕은 실로 미묘합니다. 힘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것을 한량없는 덕으로써 성자를 만드셨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과 시련
하지만 변화가 곧바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살인자 앙굴리말라가 비구가 되었다는 소식이 퍼지자, 사람들은 수행자들을 피하고 숨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비구들은 공양을 얻을 수 없었고, 승가 내부에서도 불평이 나왔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래가 행하는 법은 바른 법이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면 모든 일은 스스로 해결된다."
어느 날 탁발을 나갔던 앙굴리말라가 울며 돌아왔습니다. 해산하던 여인이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 기절해서 산모와 아이가 위험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은 앙굴리말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미 새 사람이 되었다. 그 여인에게 가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살생한 일이 없다'라고 말하라."
아힘사 비구가 그 말을 전하자, 산모는 안심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출가 이후 새롭게 태어난 그에게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한 과거, 그러나 평안한 마침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앙굴리말라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원한을 품었던 사람들이 모여 탁발 나온 아힘사 비구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 저는 아무런 원망이나 미움도 없습니다."
그렇게 그는 열반에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 불교 설화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잘못된 가르침의 위험성입니다. 스승을 무조건 맹신했던 앙굴리말라는 엄청난 죄를 짓게 됩니다. 가르침의 본질을 스스로 판단하고 성찰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입니다. 99명을 살해한 살인마도 부처님을 만나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바른 길로 나아간다면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셋째, '멈춤'의 의미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멈춤'은 단순히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멈추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은 외부 활동의 정지가 아니라 내면의 고요에서 옵니다.
넷째, 과거와 현재의 구분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살생한 일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출가 이후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음을 의미합니다.
마치며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게 모르게 타인을 해하고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앙굴리말라의 이야기는 이러한 죄의식으로 좌절과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빠르게 참회하고 바른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가르쳐줍니다. 과거의 잘못이 아무리 크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괴로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평안과 긍정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멈추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멈추고, 분노와 탐욕을 멈추고, 과거에 대한 집착을 멈추는 것. 그리고 그 멈춤에서 새로운 시작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