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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속에서 피어난 기도: 일타큰스님의 첫 번째 7일 기도

by 다보현 2026. 1. 6.

6·25 전쟁, 그리고 예기치 않은 만남

1951, 22세의 젊은 수좌 일타큰스님(1929-1999)은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새로운 꿈을 품었습니다. 한문으로 된 불교경전을 현대적으로 풀이하고자 동국대학교 입학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6·25 전쟁이 터졌고, 스님은 피난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안양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힌 스님은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중이 뭐냐?"

"부처님 법을 배우고 닦는 사람이오."

"이거 순 부르조아 아니야? 무위도식하는 족속들 이잖아?"

 

총알받이로 끌려갈 위기였습니다. 그 순간, 고위급 관리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습니다.

 

"중이구만. 팔뚝 좀 걷어 보시오!"

 

스님의 팔뚝에 새겨진 연비(燃臂) 자국을 본 그는 표정이 부드러워졌습니다.

 

"나도 불교신자요."

 

그는 스님께 사이다를 대접하고 통행증을 써주었으며, 트럭까지 태워 안양에서 김천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습니다. 작은 연비 하나가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응석사에서의 새로운 시작

스님은 진주 집현산 응석사까지 걸어갔습니다. 주지스님은 간장 한 종지에 밥 한 그릇을 주셨고, 며칠 굶은 스님은 감사히 받아 드셨습니다.

 

밥을 다 먹자마자 주지스님은 떠나라고 했습니다. 전시 상황에서 주민증 없이 머물다가는 의용군에 끌려가거나 빨갱이로 몰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님이 끝까지 떠나지 않자, 주지스님은 마음을 바꾸어 공양주 소임을 맡기셨습니다.

 

열심히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던 스님은 곧 '부전'의 직책까지 맡아 목탁을 치며 독경과 염불로 불공의식을 돕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7일 기도의 결심

부전 소임을 보던 어느 날, 스님의 마음에 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생에 대한 애착을 끊고 위없이 높고 큰 마음을 내어 대도인이 되어야 한다. 7일을 기한으로 잠을 자지 않고 옴마니반메훔 기도를 하자.'

 

처음에는 앉아서 기도하다가 졸음이 오면 일어서서 염불했습니다. 그래도 졸음이 쏟아지자 목탁을 발등에 떨어뜨려 찧기도 했습니다. 결국 마당을 돌며 쉬지 않고 염불했습니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은행나무 아래의 깨달음

 

6일째 되는 날, 비몽사몽간에 옴마니반메훔을 찾던 스님은 은행나무 밑 평상에 잠깐 앉았다가 나무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 순간, 신비로운 체험이 일어났습니다. 허공 전체가 스님의 입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신기하게도 졸음이 완전히 사라졌고, 스님은 7일 기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이장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주민증을 만들어다 주었고, 스님은 더욱 도심을 발하여 정진하셨습니다.

 

기도가 주는 힘

일타큰스님은 젊은 시절, 세 차례의 큰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는 네 손가락 연비하시기 전의 일입니다.

 

- 첫 번째: 7일 옴마니반메훔 기도 (대도인이 되기를 발심하며)

- 두 번째: 7일 단식 관조 기도 (업장소멸)

- 세 번째: 7일 석가모니불 정진 (학문과 책에 대한 집착 내려놓음)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하면 사는 데 힘을 얻게 되고,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일이 뜻과 같이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러한 때 기도가 더욱 필요합니다."

 

마음을 굳게 돌려 기도를 집중해서 하면 다시 힘이 샘솟습니다. 한 번의 기도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거듭 기도하여 도심이 걸림 없을 때까지 행해야 합니다.

 

시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신 일타큰스님의 기도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더욱 기도하여 불보살님의 지혜 자비에 좀 더 가까이 가는 계기로 삼으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일타큰스님의 기도성취 영험담 중에서

은행나무가 있는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