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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탄생에 담긴 인간 해방의 메시지

by 다보현 2026. 1. 16.

룸비니 동산에서의 기적

마야왕비가 친정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게 되었습니다. 무우수나무 아래에서 가지를 잡으려 팔을 뻗는 순간, 산기가 일어났습니다. 왕비는 나뭇가지를 잡고 선 채로 오른쪽 옆구리에서 아기를 낳았고, 네 명의 대범천이 황금그물로 보살을 받았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부축 없이 스스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습니다. 발걸음마다 연꽃송이가 피어올라 그 발을 받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에 헤매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구체적인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신 순간입니다.

 

탄생 설화에 담긴 세 가지 상징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닙니다. 세 가지 중요한 상징적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1. 옆구리에서 태어나셨다는 것

 

당시 인도는 엄격한 카스트 계급사회였습니다. 브라만교에서는 계급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전 <리그베다>에 따르면, 계급에 따라 태어나는 신체 부위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옆구리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탄생이 특별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부처님이 크샤트리아 계급의 구체적인 인간 모습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는 이야기입니다.

 

2. 일곱 걸음을 걸으신 것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육도六道로 구분합니다.

 

- 천상: 즐거움을 상징하는 하늘 세계

- 아수라: 폭력과 전쟁을 일삼는 어지러운 세계

- 인간: 온갖 세계가 펼쳐지는 곳

- 축생: 어리석음과 무지의 세계

- 아귀: 끝없는 욕망과 갈증의 세계

- 지옥: 모든 고통이 극대화된 세계

 

모든 중생은 그의 업, 즉 사고방식과 행동의 결과에 따라 이 여섯 세계를 순환합니다. 이것이 육도윤회입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육도윤회의 모습은 하루하루 우리 마음에 따라 수없이 변화무쌍하게 펼쳐집니다.

 

부처님께서 일곱 걸음을 걸으신 것은 이러한 육도의 고통스러운 세계를 극복하고 해탈을 이룬다는 상징입니다. 육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바로 해탈입니다.

 

3.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탄생게

 

이 탄생게야말로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이며, 전 생애를 통해 일관되게 추구하셨던 삶의 방향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신적 존재, 권력, 재물을 가장 존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오로지 인간 그 자체가 가장 존귀하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유아독존'''는 부처님 자신이 아닌 생명 있는 모든 존재를 말합니다. ''은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존재, 독립적 주체를 뜻합니다.

 

신 중심적이고 계급 중심적인 사회에서 부처님은 인간의 존엄성과 주체성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신이나 계급이나 재물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간 해방 선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부처님은 당시의 현실을 '삼계의 중생이 모두 고통 속에 헤매고 있다'고 규정하셨습니다. 사실 부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신이나 권력이나 재물을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위에 두고 그것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현실을 보고 '내 기필코 이를 편안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이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실현해야 할 삶의 방향입니다. 경전 속에 나타나는 신화나 신비한 사건을 통해 우리는 부처님의 삶이 주는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삶의 주인입니다. 그 어떤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존재로서의 인간,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 이것이 부처님이 탄생과 함께 우리에게 전하신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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