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정성을 모으는 것
기도는 지극한 마음(至心)으로 시작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극함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지극함은 부처님 앞에서 기도를 올릴 때만이 아니라, 기도 전의 마음가짐부터 지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타스님 부모님의 생남불공 이야기
불심이 아주 깊으셨던 일타스님의 부모님은 자식을 낳기 위해 절을 찾아다니며 정성으로 기도를 올리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지 기도를 올리는 때만 정성을 기울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논에서부터 시작된 기도
수확한 첫 쌀을 부처님께 가장 먼저 올렸던 부모님은 **농사를 지을 때부터** 이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셨습니다.
- 부처님께 올릴 공양미를 수확하는 논에는 거름도 고운 것으로 선별
- 김을 매면서도 '관세음보살', '대방광불화엄경'을 염송
- 벼가 다 익으면 낫으로 베지 않고 손으로 직접 훑어 방아를 찧음
80리 길을 걸어서
이렇게 수확을 하고 나면 아버지 법진 거사는 손수 만드신 무명베 자루에 쌀을 담으셨습니다.
깨끗하고 단정한 무명옷으로 갈아입으시고, 그 쌀을 지게에 얹어 절까지 지고 가셨습니다. 집에서 절까지 80리, 그 먼 길을 생남기도를 위해 다니셨던 것입니다.
징검다리 위의 깨달음
한번은 평소처럼 쌀을 짊어지고 절로 가시는데, 그날 따라 속이 불편해 가스가 차면서 자꾸 방귀가 나오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냥 참고 가셨는데, 절을 10리쯤 남겨둔 지점에서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다 그만 방귀를 뀌어버렸습니다.
'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러 가다가 방귀를 뀌다니!
방귀 기운이 이미 솟아 쌀로 올라갔을 것이 아닌가?'
방귀 기운이 섞인 쌀로 공양을 올릴 수 없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쌀을 짊어지고 그 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벼를 손으로 훑어 방아를 다시 찧고, 그 쌀을 새 자루에 넣어 다시 80리 길을 걸어 불공을 드리러 가셨다고 합니다.
참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 전의 정성이 이러했거늘, 기도할 때의 정성은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정성을 다한 끝에 일타스님을 낳으셨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기도하러 가는 마음가짐을 이렇게만 갖는다면, 그 기도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도는 정성입니다
마음으로 공을 들이면서 불보살님께 기원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 내 정성 내가 들이고
- 내 불공 내가 드리고
- 내 기도는 내가 하고
- 내 축원은 내가 해야
이것이 참 불공이요 참 기도입니다.
남이나 스님네가 대신해주는 것은 모두 반쪽이기 때문에 결실 또한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다할 때
기도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 정성을 자기가 남김없이 바칠 때,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환히 비춰 무명업장이 소멸되고 기도성취가 저절로 뒤따르는 것입니다.
지극하고 간절하게 마음을 모아 내 기도를 내가 하는 불자가 되도록 노력한다면, 부처님께서는 분명 우리를 기특히 여겨 안아주실 것입니다.
기도는 부처님 앞에 서 있는 그 순간만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길을 걷는 모든 과정이 이미 기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