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울음소리
1055년, 고려 제11대 문종 임금과 인예황후 사이에서 넷째 왕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태어나자마자 울기 시작하더니 잠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젖을 먹여도, 얼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혹시 병이 아닐까 걱정한 문종은 어의를 불렀지만, 왕자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멀리서 목어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면 왕자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것이었습니다.
"저 목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도록 하라!"
바다를 건너 찾아간 스님
문종의 명을 받은 관리들은 목어 소리를 따라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서해를 건너 중국 항주의 경호까지 이어진 여정 끝에, 그들은 호숫가 한 절에서 목어를 치며 염불하는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 저희와 함께 고려로 가주십시오. 왕자님을 구해주셔야 합니다."
고려에 도착한 스님이 왕자 앞에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리자, 신기하게도 왕자는 울음을 멈추고 방긋 웃었습니다.
손바닥에 새겨진 비밀
하지만 문종에게는 또 다른 걱정이 있었습니다.
"스님, 왕자가 태어난 이후 왼손을 한 번도 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해도 펼 수가 없습니다."
스님이 조심스럽게 왕자의 왼손을 쓰다듬자, 손이 활짝 펴졌습니다. 그 작은 손바닥에는 ‘
佛無靈(불무령)'이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은 영험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글씨를 본 스님은 왕자 앞에 꿇어앉아 흐느껴 울었습니다.
"스님, 우리 스님! 여기서 다시 뵙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은사스님의 환생
스님은 문종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저에게는 존경하던 은사스님이 계셨습니다. 본래 가마꾼이셨던 스님은 평생 검소하게 살며 번 돈을 우물에 모았습니다. 수십 년 후, 그 돈으로 경호 호숫가에 절을 짓고 스님이 되셨지요."
불심 깊고 덕망 높았던 은사스님은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 1년 후 - 앉은뱅이가 되셨습니다
- 2년 후 - 장님이 되셨습니다
- 3년 후 - 벼락을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그토록 열심히 정진하시던 스승님께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저는 절망했습니다. '부처님의 영험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스승님의 왼손에 '불무령'이라 새기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佛有靈 - 부처님은 영험이 있다
스님은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스승님이 쓰시던 목어를 날마다 두드리며 명복을 빌었습니다. 그런데 은사스님께서 바다 건너 고려의 왕자님으로 환생하셨으니... 이제야 부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종은 깊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불무령이 아니라 佛有靈(불유령)이구료. 부처님은 영험이 있습니다. 스님께서 갖가지 장애를 한꺼번에 받으신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영험이 아니겠습니까?
세 생에 걸쳐 받아야 할 업보를 3년 만에 모두 받으셨으니, 모든 죄를 씻고 이제 왕자로 다시 나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하실 것입니다."
천태종을 세운 대각국사
문종의 예언대로 왕자는 출가하여 불법을 깊이 닦았고, 마침내 천태종을 창종하여 고려 불교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바로 **대각국사 의천 스님**입니다.
만약 전생의 업보를 세 생에 걸쳐 받았다면, 장애의 몸으로 살며 불도를 닦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매일 목탁을 치며 염불정진하신 기도 덕분에 업보를 단축하고,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실한 기도의 힘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꾸준하고 간절한 기도에는 반드시 부처님과 보살님의 가피가 함께합니다.
요행을 바라지 않는 정직한 태도로 지극하게 올리는 기도는:
- 죄업을 녹여주고
-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며
- 마음의 차원을 한 단계 더 높여줍니다
눈앞의 고난이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그 속에 담긴 깊은 뜻을 믿고 정진한다면, 반드시 더 큰 깨달음과 성취로 이어질 것입니다.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고려 중기의 고승으로, 천태종을 세워 고려에 새로운 불교를 꽃피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