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보물은 밖이 아닌 안에 있다
불법 수행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의 한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청정하게 만드는 심법 수행을 통해 나의 마음이 맑아질 때, 가족과 이웃이 청정해지고 나아가 세계와 중생 모두가 청정해집니다.
우리는 종종 내 안의 보배를 밖에서 구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안으로, 안으로 나의 마음을 맑히고 밝혀 '나' 속에 간직되어 있는 참된 보배를 찾는 것입니다.
보물창고는 어디에 있는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대주선사가 마조스님을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그대는 무엇을 찾고 있는가?"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어찌하여 깨달음을 밖에서 찾는가? 너에게도 보물창고가 있거늘!"
"저의 보물창고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묻고 답하는 그것이 바로 보물창고지."
이 말을 듣는 순간 대주선사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뒤부터 그는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보물창고를 열어라. 그리하여 그 보물을 써라."
안주머니 속 보석의 비유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관직에 있는 옛 친구 집을 찾아갔다가 술에 취해 잠들었습니다. 마침 친구가 어명을 받고 급히 먼 길을 떠나게 되었는데, 잠든 친구를 깨울 수 없자 그의 옷 안주머니에 값비싼 보석을 몰래 넣어주고 떠났습니다.
술에서 깨어난 젊은이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여러 마을을 떠돌며 온갖 고생을 하며 살아갑니다. 한 끼를 벌기 위해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때도 많았고, 잘 곳이 없어 밖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습니다.
몇 년 후, 우연히 그 친구를 다시 만났을 때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이게 무슨 고생인가? 내가 그때 자네 사는 것이 걱정되어 옷 속에 값진 보석을 넣어주지 않았는가?"
"보석이라고?"
"바로 그 옷 안주머니에 넣어주었는데... 몰랐단 말인가? 이 보석만 팔았어도 몇 년은 잘 살았을 텐데..."
이 두 이야기 속의 '보물창고'와 '안주머니 속 보석'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성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 안의 무한한 보물
모든 중생은 누구나 이러한 보물창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써도 바닥이 나지 않고 줄어듦이 없는 영원 생명, 무한 생명의 보물창고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물을 스스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보물을 밖에서만 찾습니다.
진정 보물창고를 찾아 그 안의 보물을 마음대로 쓰고자 한다면, 결코 밖에서 찾아서는 안 됩니다. 이는 밖에서 찾는 공부가 아니라 안으로 돌아보는 공부입니다.
밖으로 흩어지는 마음을 거두어들여 삼매를 이루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참선, 염불, 기도, 보시, 자비봉사, 경전 공부 등을 통하여 번뇌를 지혜로 바꾸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나'의 벽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스스로가 쌓아 스스로를 가두었던 '나'의 벽을 무너뜨리면, '나'는 이 진리의 세계인 법계와 하나가 되어 대해탈과 대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나의 벽을 무너뜨리는 방법
그러나 나의 벽은 무너뜨리고자 해도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내 이기심과 나의 고집, 나에 대한 집착으로 너무나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 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경우는 삼매를 이룰 때입니다. 참선을 하여 삼매에 들거나, 불보살의 명호를 외워 염불삼매에 든다면 나의 벽은 홀연히 사라질 것입니다. 삼매에 들면 '나'도 대상도 한꺼번에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의 것을 아끼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보시를 행하거나, 자비봉사로 남을 위해 내 몸을 던지거나, 경전 등을 깊이 공부하고 사색한다면 무아의 이치를 깨쳐 나의 벽을 허물게 됩니다.
자랑 말고 집착 말고 정성껏
어떠한 불법 수행이라도 상관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랑 말고 집착 말고 정성껏 행하라는 것입니다.
가령 자랑하고 집착하는 보시는 그 공덕이 자랑하고 집착하는 그만큼에 불과하지만, 집착 없이 행하는 보시는 한량없는 복을 불러일으키며 깨달음의 길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불법 수행의 요체는 정성껏 행하고 비우는 것입니다. 결코 자랑을 하거나 집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불자들은 불법 수행을 함에 자랑 말고 집착 말고 언제나 겸손하면서 정성껏 정성껏 닦아야 합니다.
설산동자의 가르침
설산동자는 깨달음의 훌륭한 법문을 듣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나찰의 먹이감으로 바쳤습니다. 그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바른 법을 구했던 인연으로 설산동자는 성불의 시기를 12겁이나 앞당겨 부처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힘 닿는 데까지 꾸준히 불법을 익히고 정성을 다하게 되면 차츰 길이 열리게 됩니다.
맺음말
정녕 중요한 것은 법답게 살고 정성을 다하는 일입니다.
부디 나를 개발하여 영원 생명과 무한 생명에 이르는 불법 수행에 정성을 다하여, 자타가 함께 성불의 길로 나아가기를 축원합니다.
